아직 태풍이 북상하려면 2~3일이 남았는데 퇴근길에 하늘에 구멍이 난 듯이 폭우가 쏟아졌다. 버스에서 내려서 집까지는 불과 15분 남짓이 걸리지만 우산도 없는 터라 근처 중고책방에 들러 잠깐 책을 읽게 되었다.
1.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책의 이름이 너무 강렬해서 눈길이 저절로 갔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추천 에세이 코너에 있기도 했고 책의 제목이 모순적이면서도 공감이 되기도 해서 홀린 듯이 집어들게 되었다. 이 책은 반복적인 우울증과 불안증세에 시달리던 작가가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서 차츰 치유되어 가는 과정을 덤덤하게 담았다. 책의 분위기는 너무 희망 차지도, 그렇다고 한없이 우울하지도 않았고 그저 그동안 받아왔던 상담 내용들을 덤덤히 풀어나갔다. 처음 책을 펼친 후 내 시선을 잡아 끈 것은 아래와 같은 구절이었다.
사실 사람이 살면서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는데 그동안 나는 속상한 일이 있는 날이면 그 날 하루를 온전히 그 속상한 기분에 매몰시켜 다른 좋았던 일들을 잊고 산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이 구절은 마치 그동안 우울한 기분에 묻혀있던 나에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를 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2. 흑백논리, 편향된 사고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기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되었던 내용은, 작가가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원인이 모든 사건을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에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어떤 행동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했을 때나, 작가가 타인의 어떤 좋지 않은 면을 보고 그 사람 전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때, 작가는 자신 전체를 부정하거나 아니면 타인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내려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그럴 때마다 상담 선생님의 정확한 조언이 인상 깊었다.
작가는 누군가와 갈등 상황이 있을 때 자신의 의지를 반하고 그 사람에게 온전히 맞춰주거나 혹은 그 사람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내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을 취해왔는데 굳이 그러지 않고 그 사람과 조금만 멀어진 채로 지내거나 아니면 그 사람의 단점은 그 사람의 일부일 뿐, 다른 좋은 점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된다. 작가의 괴로운 마음은 끊임없이 관계를 정의내리려 하고 모 아니면 도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했기 때문에 더 심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모습은 나에게도 자주 보이는 모습이라서 큰 깨달음을 주었던 것 같다. 세상엔 같은 회색이라는 이름의 색깔에도 아주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는데 그런 입체적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일차적으로만 생각하는 게 나를 더 힘들고 괴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이런 나의 모습이 나를 더 완벽주의 성향으로 몰고 가는 것 같고 내 부정적인 모습을 용납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3.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총평
무거운 내용이지만 가볍게 읽히는 게 신기했다. 작가가 어려운 용어를 쓰지 않고 쉽게 풀어 썼기 때문에 술술 읽힌다. 한 시간 만에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책 내용에는 외모에 집착하는 모습이나,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겪어 힘들어하는 작가의 일화들이 나오는데, 꼭 우울증 환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내용들이 많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된다. 무엇보다 작가가 편향된 사고방식에 대해 말할 때마다 옆에서 명쾌하게 해답과 충고를 해주는 선생님의 말들이 큰 위로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 중에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은 "다 괜찮아요" 였던 것 같다.
폭우를 만나 집에 못가서 집어든 책이었지만 생각보다 꽤 큰 울림이 있던 책이었다.